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만모한 싱 (문단 편집) == 개요 == [[인도]]의 [[정치인]]. 제13대 [[총리]]를 지냈다. '''무려 10년 동안 총리직을 맡으면서 [[인디라 간디]] 이래 최장기 장수 총리'''다. 뿐만 아니라 [[힌두교]]가 초강세인 인도에서 현재까지 유일한 [[시크교]] 총리이며, [[자와할랄 네루]]에 이어 처음으로 재선에 성공한 총리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인도 정국을 진정시키고 10년 동안 인도를 이끌었던 인물이지만 당시 국민회의의 당수 [[소냐 간디]]의 허수아비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만모한 싱은 1932년 9월 26일 [[펀자브]] 주 가흐 지방에서 태어났다. 이후 [[인도 제국]]이 독립하면서 [[인도]]와 [[파키스탄]]이 갈라질 때 가흐 지방이 파키스탄에 속하게 되자 가족들과 함께 1947년 인도 지방으로 넘어왔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수료한 후 [[국제 연합]]에서 1966년부터 4년 동안 일했고, 1970년대에 처음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중앙 정치권에 들어온 만모한 싱은 탁월한 경제 감각을 발휘하며 70년대와 80년대에 인도 중앙은행 총재, 수석경제보좌관, 기획위원회 위원장 등 경제와 관련된 요직이란 요직은 모조리 거치면서 승승장구했다. 1991년 인도가 경제위기를 맞자 당시 총리였던 [[P. V. 나라심하 라오]]가 만모한 싱을 재무부 장관으로 임명했고, 만모한 싱은 인도 경제 자유화를 선포하며 성공적으로 경제위기를 넘기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경제 쪽으로 엄청난 업적을 쌓은 공로로 얼마 가지 않아 [[인도 국민 회의]]를 이끌게 된다. 정계 입문 전까지만 해도 만모한 싱은 기술관료 테크노크라트에 불과했다. 하지만 인도 국민회의가 1996년 총선에서 패배한 후에는 약 7년 간 야당 당수로 머물렀고, 2004년 총선에서 다시 인도 국민회의가 정권을 잡자 당수 [[소냐 간디]]의 예측지 못한 양보로 총리직에 올랐다.[* 당시 소냐 간디는 총리직에 오르려 했지만 소냐 간디가 총리직에 오르면 이전 정권인 인도 인민당이 추진하던 국영기업 민영화 등 여러 경제개혁이 좌초될 수 있다는 우려가 인도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확산되었고, 결국 인도 증시가 2004년 5월 17일 하루에만 15%나 폭락하는 등 인도 경제가 혼란에 빠지자 소냐 간디는 총리를 포기하고 경제관료였던 만모한 싱에게 총리직을 양보했다.] 2004년 인도의 제13대 총리로 취임한 만모한 싱의 주요 정책으로는 지방고용보장제도, 국가건강보험, 정보권 보장 등이 있다. 특히 [[미국]] 정부와 역사에 기록될만한 핵협정[* 미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지 않은 인도에 이례적으로 핵기술과 핵물질을 제공하고, 인도는 민간 핵시설에 대해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받게 된다.]을 맺으면서 세계 평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다만 이에 반발한 좌파 세력들 일부가 연정에서 탈퇴하며 잠시간 삐걱거리기도 했다. 이후 2008년 [[뭄바이 연쇄 테러]]가 발생하는 등 민심이 흉흉해질만 일들도 다수 일어났지만 대체적으로 잘 넘겼고, 인도 경제는 그의 재임기간 내내 쾌속성장했다.[* 집권 2기 막판가서는 경제가 약간 주춤했다. 그리고 이 경제 위기 때문에 결국 [[나렌드라 모디]] 총리에게 정권을 빼앗겼다.] 그렇게 만모한 싱과 인도 국민회의 정부는 2009년 총선에서도 무난히 승리, 총리직도 계속 연임하면서 자와할랄 네루 총리 이래 처음으로 연속적으로 재선에 성공한 총리라는 명예를 따냈다. 하지만 재선의 기쁨도 잠시, 얼마 가지 않아 2010년 [[커먼웰스]] 게임과 관련된 스포츠 스캔들, 인도의 통신혁명 과정에서 발생한 인도 국민회의 의원들의 2G 주파수 할당비리,[* 정부가 자격미달 업체에 통신 주파수를 할당했다가 무려 '''41조원'''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손실을 입었던 것으로, 뿌리깊은 인도의 정경유착과 부정부패가 터져나왔던 사건이었다.] '석탄게이트'라고도 불리는 인도 정부의 광산 할당 관련 썩어빠진 부정부패 스캔들 등 온갖 부정부패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터지면서 만모한 싱의 지지율은 크게 추락하게 된다. 결국 만모한 싱은 2014년에 열린 국민회의 총리 후보 경선에서 아예 빠지면서 3선 도전을 포기했고, 대신 만모한 싱 정부의 비리를 집중타격하며 인기를 얻은 [[인도 인민당]]의 [[나렌드라 모디]]가 제14대 총리로 당선되며 10년 만에 정권을 빼앗겼다. 신기하게도 [[지미 카터|퇴임 이후의 이미지가 총리 재임시절보다 훨씬 좋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